얼마 전 2023 서울국제도서전이 개최되었습니다. 오픈 시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입구의 모습이 도서전 내내 SNS에 올라왔지요. 이런 열기만 보면 출판계의 위기가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코로나 엔데믹 1년차의 사람들은 그간의 조심스러움을 벗어 던지며 여행과 캠핑,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기고 있습니다. 대형 전시회나 박람회의 경우, 취향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취향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되었지요.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이런 모습이 보였습니다. 콘텐츠 마케터로서, 출판 편집자로서 이번 도서전을 관람한 간단한 후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 해당 내용은 1회의 관람을 통한 인상비평에 가깝습니다. 실제와 다른 인상과 시선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 의견 중 하나로 여겨 주세요.
다품종, 다양성, 출판산업의 새로운 저력이 될 수 있을까?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찾아간 도서전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우선, 대형 출판사들의 부스가 대폭 줄었습니다. 여기서 대형 출판사들은, 문학 전문, 인문 전문 출판사가 아닌 유아 학습 시장이나 교과서를 점유하고 있는 대형 출판사들을 말합니다.
이미 이들 출판사들은 다양한 유아교육전에 부스를 만들어 고객들과 만나고 있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은, 이전에는 그럼에도 ‘도서전’에 참여했다면, 이제 더 이상 전력을 분산시키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고객들이 집중되는 곳에 전력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판매전략이겠지요.
그림책 전문 출판사들의 부스도 많이 줄었습니다. 출산율의 저하와도 연관이 있는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더불어 경제경영전문 출판사나 실용서들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종합출판사의 경우에도 해당 도서들을 도서전에 배치하지는 않았죠.
이 부분은 도서전의 성격 변화와도 맞물려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의 도서전이 '여러 가지 책을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는' 판매 행사가 중심된 자리였다면, 이제는 시대에 맞는 주제와 그에 따른 다양한 행사를 통해 체험 및 홍보의 목적으로 전시가 재편되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입한 도서를 박스에 실어 택배를 보내곤 했었죠.)
2023 서울국제도서전은 인문, 에세이, 교양서를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적 작품들, 작은 출판사들의 주제성이 돋보이는 책들이 많았습니다. 대형 부스보다는 소형 부스들이 옹기종기 다양하게 자리 잡고, 오히려 이 부스들이 선보인 책들이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었어요.
한두 권의 책이나, 한 가지 주제의 시리즈를 선보인 작은 출판사들은 자신의 기획 방향을 독자들에게 검증해 보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흥남부두에서 철수한 가족사를 뚝심 있게 그려서 출판한 만화가 친구도, 공학자이자 그림책 작가로 10권의 책을 낸 1인 출판사 대표님도 도서전에서 부스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도서전에서는 작가, 발행인, 저자, 디자이너의 구분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작가가 세운 출판사, 저자가 직접 만든 책, 디자이너의 실험정신이 가득한 책이 모두 모여 있었죠. 작은 출판사들의 다양한 책들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독특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책들이 실험으로 끝날 지,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양하게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통합이 긍정적인 것일지 부정적인 것일지는 조금 더 흐름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는 것은 그 산업을 구성하는 기존의 체계가 무너졌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최대 인쇄소 중 한 곳이 폐업을 했다는 소식부터 제본소들이 문을 닫아서 책 한 권을 내려면 제본소 사정에 맞춰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려옵니다. 이미 많은 신간이 1쇄를 1,000부 정도 찍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1,500부 ~ 2,000부 였었지요.
‘출판’은 물성이 있는 제품인 ‘책(도서)’을 만들어내고 판매하는 산업입니다. 산업적 측면으로 현재의 판매 부수로는 대부분 유지가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책’의 형태를 벗어나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되어 콘텐츠 산업의 한 부분으로 재편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자본력이 있는 교보문고 등의 행보와 문학동네, 다산북스 등의 모습을 보면 출판을 ‘책’이라는 물성에서 벗어나 ip의 개념으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많이 보입니다.
콘텐츠 ip의 원천은 출판이다?!
예전에는 도서전에 만화책 출판사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서울문화사, 대원, 학산 등의 만화 출판사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본다는 즐거움이 당시 도서전을 다녔던 제 즐거운 기억입니다. 하지만 이제 만화 시장은 온라인 웹툰 시장으로 재편되었고, 웹툰은 “출판문화진흥원”이 아닌, “콘텐츠진흥원” 관할입니다. 더 이상 만화의 주력 시장은 출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은(콘텐츠, IP) 담는 그릇에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매체로 확장됩니다.
“슬램덩크에 줄 선 것 봤어요?“
대원에서는 이번 도서전에 슬램덩크 부스를 선보였고, 관람객들은 강백호, 채치수, 정대만, 서태웅, 송태섭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슬램덩크 부스가 가장 붐볐던 곳이라고 참가사나 관객들 모두 입을 모았죠. 항간에는 책을 찍는데, 말 그대로 잉크 마를 새도 없이 갖다 놔도 계속 완판되었다고 하더군요.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는 한국에서도 최고의 로컬라이징 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이들의 이름은 한국 이름이 더 어울린다고 할 정도였지요. 1990년대를 풍미한 이 작품은 이후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했지만, 2030세대에게는 ‘옛날’ 만화였습니다.
하지만 올해 개봉한 <슬램덩크-더 퍼스트>로 슬램덩크는 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죠. 박진감 넘치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내용에 흥미를 느낀 MZ 세대들은 만화를 샀고, 그 여파가 도서전까지 이어진 것이었죠. (해당 영화 개봉 후 슬램덩크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대원이 슬램덩크 만화책을 두 달 만에 100만 부 판매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도서전에는 ‘슬램덩크’ 외에도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의 부스와 ‘빨간 머리 앤’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판타지 소설인 전천당의 부스에는 상대적으로 어린 친구들이 모여 있었고요. 셋 다 일본 작가의 만화와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은 시사점을 줍니다. 빨간 머리 앤은 캐나다 작가 루시 드 몽고메리의 소설이지만, 요즘은 지브리의 만화로 소개된 빨간 머리 앤이 더 친숙하죠.
만화 대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콘텐츠 IP를 갖고 있는 일본은 이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광산업과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 시키고 있습니다. 좋은 콘텐츠의 저력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점을 도서전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과거의 유산을 이용한 관광산업을 산업의 큰 축으로 삼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디즈니로 대표되는 만화왕국의 한 축을 차지한 콘텐츠를 갖고 오지 못했던 넷플릭스가 일본만화 수급에 집중하면서 일본 만화는 새로운 판로를 찾았습니다. 실제로 베트남이나 태국 서점에 가보면 요즘 유행하는 만화책 뿐만 아니라 거의 2~30년 전에 유행하던 클램프 등의 만화도 꽂혀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40~50년 전에 시간이 흘러 비용이 싸진 외화나 일본 만화영화를 들여왔던 것과 마찬가지로요.
현재는 우리 웹툰이 미국 및 유럽 등으로 적극 진출하고 있는데요. 이후의 콘텐츠 산업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함이겠지요. 이미 우리의 웹툰과 웹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로 확장되면서 해외 소비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출판은 또 다른 콘텐츠의 보고입니다. 소설과 에세이, 디자인과 일러스트와 이야기가 결합된 다양한 콘텐츠들이 새로운 IP가 되어가기를 바라봅니다. 물론, 만화만큼 웹 소설만큼 감각적이거나 즉자적이지는 않지만, 다듬새와 완결성이 남다른 출판 콘텐츠들은 또 다른 방향으로 다양하게 확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최애는 따로 있다! 팬덤의 확장
올해 도서전 관람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 ‘문화 덕후’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저만의 생각이었을까요? 부스를 도는 사람들은 책과 문화, 디자인을 좋아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습니다. 개인의 인상비평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느낌의 도서전 현장은 오히려 생생함을 더했고, 탄탄하게 느껴졌어요. (코믹 마켓에 가서 여러 부스를 돌며 쇼핑해 본 사람이라면 이 느낌을 아실 겁니다.)
이전부터 출판사들은 저자와 독자를 잇는 작업을 통해 책의 판매를 확장해 왔습니다. 다만, 몇몇 대형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저자’ 파워 보다는 저자를 통해 ‘책의 내용’을 보다 확장시키며, 책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는 형식이었습니다.
이번 도서전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저자와의 대화, 사인회를 꼼꼼히 체크하며 다니는 관람객들이 많았습니다. 독립출판이 늘어나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내는 저자들이 등장했고, 여러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콘텐츠를 확장하는 작가들이 많아졌습니다. 브런치 팬인 팔로워가 그 브런치 작가의 책을 사고, 그와 만나서 사인을 받으며 행복해하는 모습. 팬클럽 회원이 “우리 최애가 자신의 활동을 잘 할 수 있게 응원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후원을 통해 자신의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가는 힘을 얻는다면, 이제 작가들도 자신만의 독자들을 만들어가며 창작의 동력을 얻어 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다양한 팬덤을 만들어내는 문화는 콘텐츠를 더욱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입니다.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작가 팬덤이 출판을 풍성하게 하는 또 다른 원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굿즈화 되는 도서들과 플리마켓 도서전
도서전이 기간 내내 아침부터 전시장 입구에 여러 겹으로 줄을 선 사람들의 사진이 제 페북 타임라인에 지속적으로 올라왔습니다. 이런 열기를 보면 침체된 도서 시장이 다시 활성화 되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관람객들은 부스에서 사진을 찍고, 도서전 풍경을 올리면서, 도서문화를 소비하고 있었습니다. “독서”가 아닌, “분위기”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리고 사람들이 몰리는 부스는 대부분 굿즈나 사은품이 예쁜 곳들이었습니다. 예쁜 소품을 보며 구입하지만, 막상 책은 구입하지 않는 모습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작은 가게들을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입하는 플리마켓과 같이 생각하며 도서전을 찾는 것일까요?
‘책이 있는 곳에 가면, 책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그 안에서 자신에게 맞는 책도 고를 것이다.’ 라는 이야기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고 그 안에서 책에 대한 기쁨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 계기가 도서전이 되기를 바라고요.
코로나 엔데믹 이후 오랜만에 다녀온 도서전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탈피중이었습니다. 출판 콘텐츠의 다양한 실험에 도전하는 작은 출판사들을 둘러보며, 이은북의 정체성과 방향도 함께 고민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서울국제도서전이 “출판”의 본질을 잃지 않으며, 더 많은 독자들과 접점을 가져가는 행사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내년에도 참관하실 생각이세요?”
물론입니다!
얼마 전 2023 서울국제도서전이 개최되었습니다. 오픈 시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입구의 모습이 도서전 내내 SNS에 올라왔지요. 이런 열기만 보면 출판계의 위기가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코로나 엔데믹 1년차의 사람들은 그간의 조심스러움을 벗어 던지며 여행과 캠핑,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기고 있습니다. 대형 전시회나 박람회의 경우, 취향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취향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되었지요.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이런 모습이 보였습니다. 콘텐츠 마케터로서, 출판 편집자로서 이번 도서전을 관람한 간단한 후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다품종, 다양성, 출판산업의 새로운 저력이 될 수 있을까?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찾아간 도서전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우선, 대형 출판사들의 부스가 대폭 줄었습니다. 여기서 대형 출판사들은, 문학 전문, 인문 전문 출판사가 아닌 유아 학습 시장이나 교과서를 점유하고 있는 대형 출판사들을 말합니다.
이미 이들 출판사들은 다양한 유아교육전에 부스를 만들어 고객들과 만나고 있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은, 이전에는 그럼에도 ‘도서전’에 참여했다면, 이제 더 이상 전력을 분산시키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고객들이 집중되는 곳에 전력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판매전략이겠지요.
그림책 전문 출판사들의 부스도 많이 줄었습니다. 출산율의 저하와도 연관이 있는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더불어 경제경영전문 출판사나 실용서들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종합출판사의 경우에도 해당 도서들을 도서전에 배치하지는 않았죠.
이 부분은 도서전의 성격 변화와도 맞물려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의 도서전이 '여러 가지 책을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는' 판매 행사가 중심된 자리였다면, 이제는 시대에 맞는 주제와 그에 따른 다양한 행사를 통해 체험 및 홍보의 목적으로 전시가 재편되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입한 도서를 박스에 실어 택배를 보내곤 했었죠.)
2023 서울국제도서전은 인문, 에세이, 교양서를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적 작품들, 작은 출판사들의 주제성이 돋보이는 책들이 많았습니다. 대형 부스보다는 소형 부스들이 옹기종기 다양하게 자리 잡고, 오히려 이 부스들이 선보인 책들이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었어요.
한두 권의 책이나, 한 가지 주제의 시리즈를 선보인 작은 출판사들은 자신의 기획 방향을 독자들에게 검증해 보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흥남부두에서 철수한 가족사를 뚝심 있게 그려서 출판한 만화가 친구도, 공학자이자 그림책 작가로 10권의 책을 낸 1인 출판사 대표님도 도서전에서 부스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도서전에서는 작가, 발행인, 저자, 디자이너의 구분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작가가 세운 출판사, 저자가 직접 만든 책, 디자이너의 실험정신이 가득한 책이 모두 모여 있었죠. 작은 출판사들의 다양한 책들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독특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책들이 실험으로 끝날 지,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양하게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통합이 긍정적인 것일지 부정적인 것일지는 조금 더 흐름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는 것은 그 산업을 구성하는 기존의 체계가 무너졌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최대 인쇄소 중 한 곳이 폐업을 했다는 소식부터 제본소들이 문을 닫아서 책 한 권을 내려면 제본소 사정에 맞춰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려옵니다. 이미 많은 신간이 1쇄를 1,000부 정도 찍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1,500부 ~ 2,000부 였었지요.
‘출판’은 물성이 있는 제품인 ‘책(도서)’을 만들어내고 판매하는 산업입니다. 산업적 측면으로 현재의 판매 부수로는 대부분 유지가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책’의 형태를 벗어나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되어 콘텐츠 산업의 한 부분으로 재편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자본력이 있는 교보문고 등의 행보와 문학동네, 다산북스 등의 모습을 보면 출판을 ‘책’이라는 물성에서 벗어나 ip의 개념으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많이 보입니다.
콘텐츠 ip의 원천은 출판이다?!
예전에는 도서전에 만화책 출판사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서울문화사, 대원, 학산 등의 만화 출판사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본다는 즐거움이 당시 도서전을 다녔던 제 즐거운 기억입니다. 하지만 이제 만화 시장은 온라인 웹툰 시장으로 재편되었고, 웹툰은 “출판문화진흥원”이 아닌, “콘텐츠진흥원” 관할입니다. 더 이상 만화의 주력 시장은 출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은(콘텐츠, IP) 담는 그릇에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매체로 확장됩니다.
“슬램덩크에 줄 선 것 봤어요?“
대원에서는 이번 도서전에 슬램덩크 부스를 선보였고, 관람객들은 강백호, 채치수, 정대만, 서태웅, 송태섭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슬램덩크 부스가 가장 붐볐던 곳이라고 참가사나 관객들 모두 입을 모았죠. 항간에는 책을 찍는데, 말 그대로 잉크 마를 새도 없이 갖다 놔도 계속 완판되었다고 하더군요.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는 한국에서도 최고의 로컬라이징 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이들의 이름은 한국 이름이 더 어울린다고 할 정도였지요. 1990년대를 풍미한 이 작품은 이후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했지만, 2030세대에게는 ‘옛날’ 만화였습니다.
하지만 올해 개봉한 <슬램덩크-더 퍼스트>로 슬램덩크는 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죠. 박진감 넘치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내용에 흥미를 느낀 MZ 세대들은 만화를 샀고, 그 여파가 도서전까지 이어진 것이었죠. (해당 영화 개봉 후 슬램덩크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대원이 슬램덩크 만화책을 두 달 만에 100만 부 판매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도서전에는 ‘슬램덩크’ 외에도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의 부스와 ‘빨간 머리 앤’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판타지 소설인 전천당의 부스에는 상대적으로 어린 친구들이 모여 있었고요. 셋 다 일본 작가의 만화와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은 시사점을 줍니다. 빨간 머리 앤은 캐나다 작가 루시 드 몽고메리의 소설이지만, 요즘은 지브리의 만화로 소개된 빨간 머리 앤이 더 친숙하죠.
만화 대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콘텐츠 IP를 갖고 있는 일본은 이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광산업과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 시키고 있습니다. 좋은 콘텐츠의 저력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점을 도서전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과거의 유산을 이용한 관광산업을 산업의 큰 축으로 삼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디즈니로 대표되는 만화왕국의 한 축을 차지한 콘텐츠를 갖고 오지 못했던 넷플릭스가 일본만화 수급에 집중하면서 일본 만화는 새로운 판로를 찾았습니다. 실제로 베트남이나 태국 서점에 가보면 요즘 유행하는 만화책 뿐만 아니라 거의 2~30년 전에 유행하던 클램프 등의 만화도 꽂혀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40~50년 전에 시간이 흘러 비용이 싸진 외화나 일본 만화영화를 들여왔던 것과 마찬가지로요.
현재는 우리 웹툰이 미국 및 유럽 등으로 적극 진출하고 있는데요. 이후의 콘텐츠 산업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함이겠지요. 이미 우리의 웹툰과 웹 소설은 드라마나 영화로 확장되면서 해외 소비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출판은 또 다른 콘텐츠의 보고입니다. 소설과 에세이, 디자인과 일러스트와 이야기가 결합된 다양한 콘텐츠들이 새로운 IP가 되어가기를 바라봅니다. 물론, 만화만큼 웹 소설만큼 감각적이거나 즉자적이지는 않지만, 다듬새와 완결성이 남다른 출판 콘텐츠들은 또 다른 방향으로 다양하게 확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최애는 따로 있다! 팬덤의 확장
올해 도서전 관람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 ‘문화 덕후’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저만의 생각이었을까요? 부스를 도는 사람들은 책과 문화, 디자인을 좋아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습니다. 개인의 인상비평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느낌의 도서전 현장은 오히려 생생함을 더했고, 탄탄하게 느껴졌어요. (코믹 마켓에 가서 여러 부스를 돌며 쇼핑해 본 사람이라면 이 느낌을 아실 겁니다.)
이전부터 출판사들은 저자와 독자를 잇는 작업을 통해 책의 판매를 확장해 왔습니다. 다만, 몇몇 대형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저자’ 파워 보다는 저자를 통해 ‘책의 내용’을 보다 확장시키며, 책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는 형식이었습니다.
이번 도서전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저자와의 대화, 사인회를 꼼꼼히 체크하며 다니는 관람객들이 많았습니다. 독립출판이 늘어나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내는 저자들이 등장했고, 여러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콘텐츠를 확장하는 작가들이 많아졌습니다. 브런치 팬인 팔로워가 그 브런치 작가의 책을 사고, 그와 만나서 사인을 받으며 행복해하는 모습. 팬클럽 회원이 “우리 최애가 자신의 활동을 잘 할 수 있게 응원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후원을 통해 자신의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가는 힘을 얻는다면, 이제 작가들도 자신만의 독자들을 만들어가며 창작의 동력을 얻어 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다양한 팬덤을 만들어내는 문화는 콘텐츠를 더욱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입니다.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작가 팬덤이 출판을 풍성하게 하는 또 다른 원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굿즈화 되는 도서들과 플리마켓 도서전
도서전이 기간 내내 아침부터 전시장 입구에 여러 겹으로 줄을 선 사람들의 사진이 제 페북 타임라인에 지속적으로 올라왔습니다. 이런 열기를 보면 침체된 도서 시장이 다시 활성화 되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관람객들은 부스에서 사진을 찍고, 도서전 풍경을 올리면서, 도서문화를 소비하고 있었습니다. “독서”가 아닌, “분위기”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리고 사람들이 몰리는 부스는 대부분 굿즈나 사은품이 예쁜 곳들이었습니다. 예쁜 소품을 보며 구입하지만, 막상 책은 구입하지 않는 모습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작은 가게들을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입하는 플리마켓과 같이 생각하며 도서전을 찾는 것일까요?
‘책이 있는 곳에 가면, 책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그 안에서 자신에게 맞는 책도 고를 것이다.’ 라는 이야기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고 그 안에서 책에 대한 기쁨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 계기가 도서전이 되기를 바라고요.
코로나 엔데믹 이후 오랜만에 다녀온 도서전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탈피중이었습니다. 출판 콘텐츠의 다양한 실험에 도전하는 작은 출판사들을 둘러보며, 이은북의 정체성과 방향도 함께 고민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서울국제도서전이 “출판”의 본질을 잃지 않으며, 더 많은 독자들과 접점을 가져가는 행사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내년에도 참관하실 생각이세요?”
물론입니다!